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회고록
2017.11.24 03:12


회고록... 이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잠이 안 와서 주절거리는 드미트리 이야기. 곡은 내가 좋아하는 Eri tu.


처음 내가 드미트리라는 성악가에 대해 알게 된 직후로 쭉 빠수니였던 건 아니고, 그냥 일개 라이트팬 1에 지나지 않았었다. 오히려 드미트리랑 자주 듀엣하는 조수미 쪽을 더 좋아했으면 했지... 입덕하게 된지는 얼마나 되었을까. 3년 가량이 되었으니 아직까지 TK 다음으로 오래 빨고 있는 오빠인 것 같다. 무척이나 각별했었는데, 드미트리한테 입덕하면서 입덕 계기도 상세하게 기록했으니 내가 덕질했던 오빠들 중에서 제일 기록이 많이 남은 오빠이기도 했다.

그때는 드미트리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 하는 게 불안불안했다고 적었는데 실제로는 정말 SNS로 아무 일도 없었다. 오히려 트위터가 있는 스타들의 좋은 예에 가깝지 않았을까. 한창 뇌종양으로 스케줄 전부 캔슬하고 치료 받으러 공백기 가졌을 때 자기 SNS로 자기 괜찮다고 셀카 찍어 올리기도 했고 나도 그 사진 보고 이게 뭐야ㅋㅋㅋ 장난기 심해ㅋㅋㅋ 했으니까. SNS의 드미트리가 올리는 장난기 넘치는 사진들이 재미있었다. 걱정이랄 것이 없었던 팬질이라 더 고마웠는지도 모르겠다.


뇌종양으로 콘서트에서 쓰러지기도 했었고, 그때 이후로 빠르게 재활치료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발성에 이상은 없는데 균형기관에 문제가 생겼다’ 정도를 전해들었다. 무사히 끝내고 재기해서 활발하게 다시 스케줄을 소화하기도 한 터라 다소 잠잠하다고 생각만 했지... 호스피스 시설에 들어가서 평온하게 사망했다는 공홈 소식을 아직 쭉 읽고 또 읽는 중이다. 히데코 입덕한 후로 본진이 수니질에서 다시 덕질로 바뀌는 바람에 오페라에서 은퇴한 것도 크게 알아보지는 않았어서 플레밍이 오페라에서 은퇴했던 것처럼 비슷한 거겠지 하고 대수롭잖게 넘겼었다가... 아...

처음 드미트리의 부고를 전해들었을 때 멘탈이 터진 건 아니었는데 기분이 무척 이상했다. 예전에 도밍고가 앞으로 계속 음악에 종사할 거라 소리 안 나오게 되면 지휘자로 전향할 거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고희 넘으신 도밍고를 걱정하면 했지... 아니 사실 도밍고도 저 말 듣고는 걱정 안 했었다. 약간 나한테 오히려 도밍고의 부고를 들어도 도밍고는 외할머니처럼 영원히 살 줄 알았어... 하고 말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라. 아무튼간에 매일 운동하고 매일 골골거리던 나보다 더 건강하게 살던 드미트리의 부고 소식을 이렇게 이른 나이에 들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구나... 같은... 생각도 들었고.


입덕했던 곡은 조수미와 함께 했던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의 듀엣, 가장 좋아했던 곡은 가면 무도회에서의 아리아, 가장 좋아했던 배역은 예브게니 오네긴에서의 오네긴. 적고 있으면 모두 하나같이 내가 오페라를 덕질했던 길이 드미트리를 따라 걷는 길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세 곡과 배역이 하나같이 전혀 다른 모습들인데 동시에 드미트리의 매력이기도 했다.

재기 넘치는 피가로로 장난도 치고, 때로는 오열하기도 하고, 음울한 중2병 캐릭터도 소화하는 게 좋았다. 좋아하는 오페라들을 보는 것뿐 아니라 드미트리가 너 이런 거 좋아하지 알아 하면서 또 다른 오페라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 한동안은 드미트리의 영상물이나 음악을 쭉 돌려볼 예정이다.


아마... 앞으로 다른 사람을 오빠로 모시게 되어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덕질하면서 생전 한 번도 병크 안 터뜨리고 평온하게 덕질하게 해주면서 떡밥이며 스윗한 일화며 왕창 뿌려주다가 자고 일어났더니 오빠의 부고 소식을 전해들었다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잖아.

많이 좋아했고, 앞으로도 좋아할 성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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